음료와 케이크의 포장을 위해서는 다회용기를 직접 가져가야만 하는 카페 '얼스어스'
다양한 용기를 가져와 SNS에 인증하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로 자리 잡았지만, 원칙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고민도 들을 수 있었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하는 진심어린 마음에서 시작된 카페의 도전기와 성장기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도 먼 머리에서 발로의 여행. 맛있고 편안한 카페를 통해 그 여행의 시작을 안내하는 얼스어스의 길현희 사장님을 만났다.
<Chapter1. Love Earth, Love Us>
얼스어스는 어떤 가게인가요? 가게에서 번거로운 포장법이라는 말을 사용하던데 어떤 포장법을 말하나요?
얼스어스는 포장이 되지 않는 이상한 카페입니다. 보통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포장을 많이 하시잖아요. 그렇기에 포장이 번거롭다는 말은 어찌 보면 말이 안 되는 조합일 수 있는데, 다른 곳보다 애를 써서 번거롭게 포장해야 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번거로운 포장법’이라는 말을 지었어요. 사실 엄청난 의미를 두고 지었다기보다는 저희 가게에서는 포장이 안 되는데 어떻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하는 것을 관심 있게 봐주실까 싶어서 이렇게 처음 말하게 되었지요.
얼스어스라는 가게 이름에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얼스어스는 For Earth, For Us 혹은 Love Earth, Love Us 라는 의미로 지구를 위하는 일이 우리를 위하는 일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이에요. 제가 학교에서 광고과였는데, 당시에 카피라이터나 브랜드 네이밍을 하는 선배가 특강을 해주신 적이 있었어요. 그 때 보니까 여러 가지 이름을 지으셨더라고요. 김치를 대명사로 만든 홍진경의 ‘The 김치’도 그 선배가 지으셨죠. 저도 언젠가는 브랜드를 만들거라 생각하면서 그 선배가 알려준 방법대로 여러 가지 단어들을 써 놓고, 제가 의미부여 하고 싶은 단어들, 그리고 입에 더 잘 감기는 단어들을 조합하다 보니까 얼스어스라는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그럼 학교 다니실 때 이미 얼스어스라는 카페를 생각하셨던 건가요?
그때는 카페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어요. 원래는 공익광고를 하거나 사회적 기업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학교 다닐 때 광고를 배웠으니까 매체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제가 원래 환경에 관심이 많았고, 또 커피를 워낙 좋아했어요. 그래서 커피, 환경과 관련된 메시지를 전달해보자 생각해서 학교 다닐 때 얼스어스라는 피드를 먼저 만들었고, 거기에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커피를 통해 이미지와 함께 전달했어요.
얼스어스 카페의 철학이나 원칙이 있나요?
아직 철학은 잘 모르겠어요. 원칙이 있다면 다들 아시겠지만,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 이게 첫 번째 원칙이고, 두 번째로는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가 될 것 같아요.
다회용기가 없는 손님을 돌려보낸 것과 관련하여 인스타그램에서 뜨거운 논쟁이 있었잖아요.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손님들이 저희 가게를 찾으실 때, 친환경 컨셉을 보고 찾아오시기보다는 맛 때문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환경에 대한 부분을 힘주어 말해왔다면 환경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저희를 더 많이 팔로우하고 찾아와 주시겠지만, 저희의 타겟은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었어요. 제가 처음 카페를 시작했을 때부터 캠페인적 성격보다는 일반 다른 카페와 다를 바 없이 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 이후에 맛도 맛이지만 환경도 생각하는 곳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가게 앞에 설명이 있는 문구나 입간판도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 제가 의도한 대로 다양한 분들이 와주시게 되었어요.
하지만 저희의 컨셉을 알고 찾아와 주시는 손님만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재사용한 일회용품을 가져오신 손님을 돌려보내거나 얼스어스에서의 포장만을 위해서 다회용기를 새로 구매하시는 손님들이 생겼어요. 이게 정말 친환경 컨셉에 부합하는지 혹은 손님의 입장에서 한 번쯤 허용해 주는 게 좋지 않았는지 등의 논쟁이 있었죠. 저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고 마음이 어려웠어요. 사실 저희가 초반에는 그런 용기를 가지고 오셔도 다 해드렸어요. 그런데 그걸 보셨던지 컵라면을 용기를 가져오셔서 달라고 하시는 분도 계셨고, 재사용한 일회용품을 허용하자니 정말 많은 일회용품이 있는데 그게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더 말이 안 되는 용기를 가지고 오셔서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왜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냐 하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 운영을 하면서 이렇게 예외를 두면 안 되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이미 한번 깨닫고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다시 원칙을 깨고 해드려야 되나 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잘 모르겠네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을까요?
장사를 하는 공간에서 손님을 돌려보낸 다는 건 사장님으로서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얼스어스에서의 포장을 위해서 다회용기를 새로 구매하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불필요한 물건을 사는 거니까 친환경이라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닐까요?
방문하시는 손님들이 보통 집에 있는 통을 가지고 오시지만 간혹 새로 사오시기도 해요. 포장도 안 뜯은 것을 가지고 오셔서 세척해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이 봤고요. 우리 가게 때문에 새로 구매를 하시는 것은 제가 정말 추천하지 않는 방법이에요. 통이 없으시면 포장이 안 된다고 말씀드리지, 근처 가게에서 구매하실 수 있다고는 절대 말씀드리지 않거든요. 그런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 가게를 통해서 이런 경험을 해보시고, 이 통을 앞으로는 얼스퀘이크나 디저트를 담는 통으로 보관하고 계셨다가 다음에 다시 사용하시면 이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제가 작년에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러 방문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충전해서 오래 사용이 가능한 전기 라이터를 설명해주신 게 인상 깊었거든요. 이외에도 환경을 생각해서 가게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 또 있나요?
일단 고체 세제와 천연 수세미를 사용하고 있고요. 사실 베이킹을 할 때 일회용품이 꽤 많이 쓰이는데, 어떻게 하면 일회용품을 안 쓰고 만들 수 있을까 해서 만든 메뉴가 바로 레어 케이크였어요. 일회용품을 전혀 안 써도 되거든요. 음,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있겠지만 다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당연하게 하는 일인데, 뭐가 환경을 위해서 하는 건지 딱 떠올리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냥 기억이 나는 건 이 정도에요. 아, 실리콘 랩도 생각이 나네요(웃음).
작은 실천들이 삶의 일상이 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중요할 것 같아요. 혹시 가게에 오신 손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단골손님이 저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분들이고, 기억에 남는 분들이고요. 오래오래 봤으면 좋겠고 또 봐도 반가운 분들이에요. 기억에 남는 분들은 특이한 용기를 가지고 오시는 분들인데요, 특이한 용기로 인증하시려고 하시는 손님들도 있으신데 그런 분들이 신기하고 감사하고 기억에 남아요. 그래도 가장 생각이 많이 나고 기억에 남는 손님은 단골손님이에요.
그렇다면 제일 기억에 남는 용기가 궁금해요.
구급함이요. 구급함 상자를 가지고 오셔서 그 안에 넣어달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연남동에서 감자탕집이 있는데, 감자탕 드시다가 케이크가 생각 나셨나봐요. 그래서 감자탕집 반찬 그릇을 가지고 오셔서 담아달라고 하셨어요. 감자탕집 가셔서 후식으로 드셨대요(웃음). 찜기나 밥솥 이런 것들도 있고요.
혹시 반대로 사장님의 마음을 어렵게 했던 손님이 있을까요?
딱 기억에 남는 손님분이 있어요. 저희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 세척하여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기를 가지고 오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려요. 그렇지만 저희도 같은 안내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계적으로 말을 하게 되고, 모든 정보를 이분에게 상세히 안내해드리기 어렵잖아요. 손님도 똑같이 흘려듣게 되고요. 그 당시 손님이 그냥 방문하셨다가 포장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와야 포장이 된다고 이해하시고 나가셔서 일회용품을 사 오셨어요. 연남동 맞은편 마트에서 일회용 은박지였어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일회용품에는 담아드리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손님이 화가 많이 나셨어요. 정말 난처했고, 저희 가게만의 운영방침이 있지만, 저도 손님의 입장이 된다면 그것 또한 기분이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음이 어려웠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서 그분이 다시 방문을 해주셨고 가게에서 드시고 가셨어요. 너무 감사해서 과일을 좀 갖다 드리면서 다시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 이후로는 그분이 주기적으로 오시는 단골손님이 되었어요. 그냥 안 좋게 나가시면 마음이 쓰이지만, 그렇게 가셨다가 다시 오셔서 단골이 되시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어요.
<Chapter2. 카페의 본질 : 맛있는 카페, 편안한 공간>
사람들이 왜 얼스어스를 찾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좀 건방진 말일 수 있겠지만 맛있어서 찾아주신다고 생각해요. 돈을 주고 사 먹는데 맛이 없으면 안 먹을 테니까요. 저희 케이크가 대체로 좀 꾸덕하고 묵직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한 입 드시고 남기시는 분들도 간혹 계세요. 그렇지만 또 취향을 저격하면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플러스 환경적인 것까지 생각하는 곳이기 때문에 좋게 봐주시는 게 아닐까요.
사실 조금 의외에요. 물론 저는 얼스어스의 케이크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대체로 친환경적 운영방침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신다고 생각했거든요.
카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손님들의 재방문율이 정말 중요한데, 환경적인 이슈로 오시는 분들은 일회성에 그쳐요. 왜냐하면 저희 카페가 어떤 굿즈를 판매하는 곳은 아니니까요. 또, 환경에 관심이 있으신 손님들께서 카페라는 공간이 필요하시다면 다른 카페를 가서도 일회용품을 안 쓰실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미 한 번 방문하셨던 분들이 재방문하는 이유는 맛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환경적인 것은 부가적인 요소일 것 같아요. 카페라는 공간이니까요.
메뉴 개발을 어떻게 하셨는지, 베이커리를 따로 배우신 건지도 궁금해요.
저는 커피를 정말 좋아해서 대학교 1학년 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그 이후로 7년 동안 계속 카페 일을 했어요. 그래서 커피 메뉴나 음료는 어렵지 않게 레시피를 잡았어요. 그런데 제가 디저트를 별로 안 좋아하고 다른 카페에 가서도 디저트를 잘 먹지 않던 사람이에요. 어떤 카페를 가도 디저트가 항상 성에 차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맛이 없다고 생각해서 먹지 않았었는데, 제가 가게를 시작하려고 하다 보니 케이크 판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다른 곳에서 케이크만 받아 올 생각이었죠. 예전에 제가 일했던 곳에서 맛있게 받아오던 케이크 집이 있어서 거기서 받아와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대량으로 받아와야 하는데 큰 냉장고가 필요하기도 하고, 케이크 배송이 박스로 오게 되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박스 포장과 불필요하게 큰 용량으로 사야되는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판매할 케이크를 하루에 열 개 정도 직접 만들어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유튜브를 보면서 제가 맛있겠다 생각되는 재료들을 때려넣고 반죽을 해가면서 만들어봤더니 맛있었어요. 테스트 한 번만에 너무 맛있어서 설탕만 좀 줄이고 그대로 쭉 가게 되었어요. 처음 가게를 했을 때가 2017년이었는데, 그때는 케이크가 이렇게 인기가 많을지 몰랐어요.
케이크는 매일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또 구매는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나요?
저희는 9시에 출근해서 케이크를 만들고 12시에 오픈을 하고요, 당일 생산, 당일 판매만 하고 있어요. 평일에는 요즘 6시까지만 오픈해서 30개 정도를 만들고, 바스크 케이크는 별도로 좀 더 구워놓고요. 조금씩 늘려서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케이크는 오후에는 보통 모두 소진이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하신 분들은 전날까지 예약하시면 되시지만, 예약을 통해서만 구매하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오셔서 포장해가실 수 있어요.
직원들은 몇 명이 있으신가요? 어떻게 함께 일하게 되셨는지, 직원들과의 케미는 잘 맞나요?
직원은 저 포함 9명이고, 제 과 동기 친구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알바 사이트에서 구인구직을 통해 만났어요. 구직을 하다가 공고를 보고 공간이 예뻐서 온 친구들도 있고, 아니면 환경에 관심이 있어서 온 친구도 있고요. 근데 저는 피드에 구인을 한다고 노출하지는 않는 편이에요. 팬심으로 왔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있어서요. 저희는 일을 하려고 모인 곳이지, 친해지는 것은 나중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와서 일하면 좀 불편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정말 일을 구하시는 분들을 원하는 편이었는데, 얼스어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시거가, 좋아하고 계시다가 지원을 원하는 분들도 계세요. 정말 열심히 적어주시는데 결국에는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를 대화 속에서 최대한 유추해보려고 해요. 저는 좀 성실하고 예민하지 않고, 바른 사람을 좋아하더라고요.
연남점에 이어 서촌점이 생겼는데, 서촌은 어떻게 선택하고 오게 되었나요?
사실 연남점에 이어 서울에 지점을 하나 더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2호점은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부산에서 컨택이 와서 부산지점을 오픈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서울과 부산을 반반 살다 보니까 서울이 너무 그립고, 그중에서도 부산에 없는 한강이나 궁의 담벼랑 같은 것들이 너무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을 가면 종로를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서촌에 ‘이이엄’이라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너무 좋아하는 공간이라 기대가 되어서 미리 갔어요. 그러다 저도 모르게 부동산을 기웃거리게 된 거죠. 부동산 사장님께 원하는 공간에 대해 말씀드렸고, 부동산 사장님이 건물주분께 전화를 드렸어요. 마침 건물주분이 거기 계셨어서 바로 보러 갔죠. 지금 공간을 보고 너무 좋아서 눈이 뿅 갔어요.
구체적으로 이 공간의 어떤 점이 매력 있다고 다가왔을까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다 보니 삭막한 느낌도 들기는 했어요. 중정이 있는데 오랫동안 방치되다 보니 초록색 이끼가 바닥에 잔뜩 끼어있었어요. 그리고 옆집과 분리하려고 담벼락 위로 나무 방음벽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게 너무 오래돼 다 부서진 상태여서 폐가 같았거든요. 근데 그걸 보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서울 한복판인데도 불구하고 휴가 보내면서 놀러 와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은 창이 작다 보니 해가 잘 안 드는 건데, 그래도 좋았어요.
<Chapter3.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당연한 걸음>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과정은 왜 필요할까요?
어렸을 때 과학 상상화 그려보셨나요? 저는 어릴 때, 지구에서는 살지 못하고 땅을 파서 살거나 하늘에서 살거나, 아니면 우주로 나가는 상상을 했었어요. 제가 과학을 잘은 모르지만, 과학의 발전보다 빠르게 황폐화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시간이 나면 환경과 관련한 워크샵을 가보는데, 그럴 때면 그렇게 눈물이 나요. 큰일이 났구나, 이제 지구를 되돌릴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원래 지구에 남극과 북극의 하얀 부분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고, 해수면도 높아지고, 작년 여름 태풍도 심했고. 사람이 점점 살기 어려운 공간이 되어가고 있어요. 난민들은 늘어나고, 빈부격차도 더욱 심해질 거고요. 이런 문제들이 너무 끔찍해요. 승리호 보셨어요? 그것도 환경 문제로 시작하잖아요. 저는 그걸 보면서 그렇게 가슴이 답답할 수가 없는 거예요. 2092년에 지구는 저렇게 황폐화가 될 가능성이 짙은데, 과학의 발전은 그 만큼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사실 저는 어느 정도 살다가 죽을 테니까 저만 생각하면 상관이 없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우리의 아랫세대가 문제라는 거죠. 사실 우리 가족과 나를 위해서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고 들었는데, 이미 사 먹고 있잖아요. 제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는 산소를 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어있을지 모르죠. 당장 나에게 돌아오는 문제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지구를 위해서라는 말로 좋게 포장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저를 위해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나와 아랫세대를 위한 노력이라는 게 정말 공감되는 말인 것 같아요. 최근 친환경,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거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점도 있고, 걱정되는 점도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실내에서 담배를 피워도 괜찮았어요. 지금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비매너라는 것이 상식으로 통용되지만, 처음 실내 금연이 시행되었을 때는 반발이 되게 심했어요. 환경적인 이슈에서도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힘주어 말하다 보면 언젠가는 상식으로 통하는 날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어요. 반면, 반발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목소리도 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백날 이거 해봤자 중국이나 미국이 뭐하면 소용없다 이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댓글에도 항상 있는 말인데. 그런 반발심이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 잠깐 지나가는 유행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서 법이 바뀌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환경적인 규제를 하게 되면 기업에서는 싫어할 수 있으니까 법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장님의 삶에서 환경에 대한 걱정, 관심, 그리고 실천의 과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어요. 학교에 다닐 때도 저는 남들에 비해 유난히 환경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저희 할머니도 휴지로 닦으면 말려서 또 쓰시는 분이셨고, 부모님도 항상 물을 아껴 쓰라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요. 저도 그러다 보니 물이나 샴푸 등을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어요. 생각나는 게 초등학교 때 처음 수련회를 가잖아요, 거기서 친구가 샴푸를 두세 펌프씩 쓰는 걸 보고 좀 충격을 받았던 게 생각이 나요. 처음 카페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플라스틱 잔들이 그냥 버려지는 걸 보고 집에 가지고 와서 화분을 만들거나 속옷 통을 만들기도 했었는데, 매일 나오는 쓰레기가 너무 많다 보니 역부족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노년에 은퇴하고 한적한 곳에 카페를 하게 되면 포장이 안 되는 카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21살이었을 거에요. 그러다가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1호 그린 디자이너로 불리는 윤호섭 교수님의 특강을 듣게 되었어요. 그분은 집에 냉장고가 없고, 작업실에서도 전기를 안 쓰시거든요. 그걸 들으면서 저도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데 어떤 걸 실천할 수 있을까 하다가 그때부터 텀블러를 늘 들고 다녔어요. 조금씩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면서 실천해나갔던 것 같아요.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네요. 혹시 가게 외에 개인적으로 환경을 위해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 있나요?
제가 군것질을 좋아해서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제외하고는 일회용품을 거의 안 쓰는 것 같고. 손수건을 사용하는 거나 고체 세제 사용하는 게 떠오르고요. 대나무 칫솔, 생분해 치실, 장바구니 등이 있고, 배달음식도 잘 먹지 않아요. 통을 들고 가서 가져오거나 아니면 가서 먹어요. 또 뭐가 있을까요? 저도 하나씩 바꿔갔던 것 같아요. 사실 얼마 전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이런 걸 물어보시면 어떤 게 특별하게 실천하고 있는 건지 딱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직원들에게 우리가 어떤 것들을 실천하고 있는지 물어봤더니, 베이킹 할 때 실리콘 랩 이외에는 일회용품을 안 쓰고 있다거나 여러 가지를 말해주더라고요. 제가 혼자 살다 보니까, 저 이런저런 실천을 하고 있어요, 신기하죠? 라고 하기가 어려워요. 이미 저에게는 당연해져서요.
누군가는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지 못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관심이 있는 분들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 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심이 있다면 실천할 방법을 계속 생각하실 테니까, 불편한 마음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환경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정해놓고 잘 실천하고, 하나씩 몸에 체득이 되면 또 늘려나가시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면, 반감이 있으신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제가 강요하지는 않아요. 실천하기 쉬운 것들을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선택은 스스로에게 맡기죠. 제가 이런 가게를 운영하는 것을 아는 지인들도 일회용품 선물을 사 오시기도 하고, 퇴근하면 배달음식을 시켜놓겠다고 저에게 말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분들에게 제가 이야기를 하면 그분들이 바꿔야겠다고 생각을 할까요? 오히려 의가 상하기도해요.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 그런 사람들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Chapter4. 좋아하는 일은 삶의 연장선, 길현희 사장님>
길현희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저는 잘하는 건 없지만 주어진 모든 것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혹시 얼스어스 카페를 하기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광고회사에서 기획자로 일을 했었어요.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일하는 친구들이 언니는 왜 뉴스나 기사도 안 올리냐, 재료 소진이 되었다고 피드에 올려야 하는 거 아니냐, 광고과 나왔으면서 이렇게 좋은 매체가 있는데 왜 안 하냐 물어봐요. 그런데 제 성격이 남의 것은 홍보를 잘 해주는데 제 건 힘주어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저도 해야 한다고 생각 하는데 제 건 잘 못 하겠어요.
카페에 나오지 않는 휴무일에는 보통 어떤 걸 하며 시간을 보내시는지 궁금해요.
제가 지금 휴무가 없어요. 휴무가 있어야 플러스 알파로 가게의 다른 부분도 신경을 쓸 텐데, 가게에서 모든 힘을 소진하고 가요. 카페가 되게 여유롭고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을 하시는데 사실 진짜 힘들거든요. 그리고 오픈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여기서 일해요. 종일 서서 일하고, 밥도 많이 걸러요. 앞으로는 직원 교육도 많이 시키고 조금씩은 제 시간을 가져보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은 휴무가 없으시니 취미 생활도 못 하시겠네요. 원래 가지고 있던 취미가 있어요?
저는 원래 도예를 했어요. 6개월 정도 서울에서 하다가 부산에 가서 또 1년 정도 도예를 정말 열심히 했었거든요. 제가 도예를 하면 그 무드가 이 가게의 공간에도 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취미로만 하는 건 아니고 얼스어스를 위해서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재밌게 했어요. 다시 서울로 오면서 못 하고 있는데, 정말 다시 하고 싶어요. 제가 다니던 공방에서 제작했던 식기류들이 가게에 있고, 제가 제작한 것도 있어요.
사장님에게는 일이 곧 삶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네요. 그만큼 가게에 대한 열정이 정말 크신 것 같아요. 혹시 개인적으로 최근의 고민거리가 있나요?
아까 얘기 나누었던 그 이슈에 대해 고민해요. 우리는 이 길이 옳다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불편함을 전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멘탈이 박살나기도 하고, 억울했어요. 이유 없이 욕을 먹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대표님이 dm을 보내주셨는데, 상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시면서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더 단단해질테니 속상해하지 말라고 해주셨어요.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더라고요. 사실 그 전에는 너무 무서웠어요.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저에게 보내주시는 장문의 글들이 정말 무서웠어요. 이래서 대인기피증이 생기나보다 싶었죠. 그때는 제가 너무 힘들어서 참 어두웠어요. 한 2주 정도 그 게시물에 댓글이 달렸고, 나중에는 비난적인 글들이 많이 달려서 댓글을 접었는데 그때부터 dm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힘들고 상처가 되는 상황이 계속되다가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좀 담담해지고 괜찮아지더라고요. 지금은 좀 고민은 되지만, 제가 틀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방법을 바꾸기보다는 꾸준히 하는 게 답이 아닐까 해요.
사장님은 어려움에도 의연하고 꾸준하게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분이신 것 같아서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게를 시작하기 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더 많이 놀고, 더 많은 곳에서 일해봐라. 회사를 다니면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쉴 수 있는데, 자기 브랜드를 시작하면 휴무를 반납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제가 어린 나이에 시작하다 보니, 사회경험이 있었다면 당연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제 나이가 어려서 속상한 일들이 많았어요. 사회경험을 좀 더 많이 하고 왔다면 어렵게 풀어나갔던 일들도 조금은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회사든 식당이든 카페든 어디에서든 더 많이 일을 해봤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얼스어스를 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을까요?
얻은 것은 참 많은데 가장 큰 건 아무래도 브랜드에요. 잃은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낼 수 있는 모든 시간이요.
그래도 돌아간다면 카페를 하실 거죠?
이렇게 힘든 과정을 모른다면 할 것 같은데, 다 안다면 고민해볼 것 같아요. 물론 시작한다면 열심히 하겠지만, 힘든 일도 너무 많아서요. 가족들과 시간 많이 못 보내는 것, 친척들 얼굴 못 본지도 오래됐고요. 지금처럼 일하는 것은 좀 슬픈 것 같기는 해요. 내 브랜드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자리를 못 떠나는 게 크겠죠. 그래도 엄청 뿌듯하고 만족해요. 그리고 좋은 건, 다들 나이 먹는 것 안 좋아하잖아요. 저도 제가 나이 먹는 건 싫은데, 제 브랜드가 나이 드는 건 너무 좋아요. 예전에는 커피도, 디저트도, 공간도 자신 있는 게 하나도 없고 불안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꾸준히 손님들이 온다는 것 자체가 제가 잘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져요. 오래 하는 게 가장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얼스어스가 미치는 영향력도 큰 것 같아요. 사람들이 얼스어스를 어떻게 기억하기를 원하시나요?
‘거기 괜찮은 공간이야‘ 하고 말해주시면 좋겠어요.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저는 일회용품을 쓰는 게 불편하니까 저 좋으려고 하는 거예요. 사실 어떤 영향력을 바란다면 가족들부터 뜯어고쳤을 텐데, 제 가족들도 여전히 종이컵 쓰고, 테이크 아웃도 해요. 제 지인들도 저랑 있을 때 주의는 하지만 본인의 삶에서 완벽하게 하지는 못하거든요. 제가 안 힘들다고 해서 상대가 힘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싶지 않고, 그런 욕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제가 부끄러워지는 말이네요. 타인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니까 하나씩 실천해나간다는 것이 정말 와닿아요. 혹시 또 다른 친환경 가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실제로 어떤 것들이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건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간혹 어떤 분들이 얼스어스 덕분에 친환경 카페를 오픈하게 되었다고 태그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주시기도 하는데, 저희처럼 테이크 아웃이 안되는 건 아니고 생분해가 되는 물건들로 바꾸시는 것을 보았어요. 사실 조금만 공부를 해보면 생분해가 환경에 얼마나 큰 부작용을 초래하는지도 알 수 있어요. 무조건 생분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거든요. 생분해 비닐이 땅속에 들어갔을 때 100% 생분해가 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가 부족하고, 30%만 생분해가 된다고 해도 생분해 마크가 찍힐 수 있어요. 땅속에 현재도 미세 플라스틱이 많다고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어떤 부작용을 만들지 모르고, 조금만 공부를 더 해보면 생분해도 사용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재활용의 혼란도 커요.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고 분리배출을 하니까 플라스틱 혹은 비닐에 함께 버리잖아요. 거기에 생분해 플라스틱이 껴있으면 함께 있던 플라스틱이 다 재활용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해요. 그래서 실제로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사장님의 한 마디!
친환경은 불편한 생활방식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면 전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거니까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큰 영향력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거창한 미션을 기대했다. 혹은 친환경 컨셉을 마케팅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쯤으로 생각하고 인터뷰를 하러 갔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 전 마음 속 예상했던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얼스어스는 지구의 생태 위기 속에서 잘못된 생활 습관이 마음의 불편함을 주기에, 그저 하나씩 고쳐나가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를 바로 잡는 유치차격의 마음가짐. 물론 부끄러움을 변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잘못된 습관을 고쳐나가는 내면의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얼스어스의 멋지고 진정성 있는 한 걸음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글 | 서촌유희 사진 | 서촌유희
© YOOHEE.SEOCHON
이 게시물의 글과 사진을 허락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활용에 대한 요청 및 질문은 yoohee.seochon@gmail.com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