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들로 시끌벅쩍한 통인시장을 가로지르면 인적이 드문 한옥길이 보입니다. 맛있는 시장 음식들의 유혹을 이겨내고, 비로소 적막 속에서 은은히 퍼지는 카레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무채색의 작은 가게에는 투박한 한문으로 ‘공기식당’만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음식 냄새 앞을 지나치지 못하는 길 고양이 ‘코리’와 나란히 서서 잠시 한가한 서촌의 볕을 쬐고서야 가게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민무늬 노렌을 걷고 들어서니 가게 외부만큼 담백한 가게 내부가 보입니다.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는 사장님의 모습은 분주해보이지만 정적입니다.자리에 앉아 오늘의 메뉴를 확인합니다. 공기식당은 매일 메뉴가 바뀌는 시스템이며, SNS(재미있게도 아이디는 lonley_table입니다.)를 살펴보면 그날 준비하는 메뉴와 사장님의 하루 일상, 생각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메뉴인 ‘치킨탄두리카츠카레’에는 반숙계란이 조용히 얹혀있고, ‘크림치즈키마카레’는 반숙계란을 별도의 접시에 담아서 내줍니다. 각 카레마다 사장님이 추구하는 맛과 방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카레를 맛있게 먹고, 분주한 평일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한권의 서점’은 담백한 카레를 닮은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Q1. 안녕하세요. ‘공기식당’이라는 이름이 특이하게 다가오는데, 그 유래가 궁금합니다.
“공기공단이라는 일본 밴드가 있거든요. 여기 음악이 되게 조용하고 그러는데, 듣고 있으면 되게 차분해지는 느낌이라 항상 자주 들었어요. 가게를 시작할때 차분한 공간을 하고 싶어서, 마침 딱 느낌이 왔죠. 밥 공기의 공기도 공기고, 마시는 공기(空氣)도 공기고. 그렇게해서 공기식당이 되었죠.”
Q2. ‘공기식당'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회사다니면서 요리를 그냥 좋아해서, 주말이나 쉬는 날 있으면 요리수업 다니고요. 요리랑 빵 만드는 거 좋아해서 개인적으로 연습하고 배우러 다니고 그러다가 회사생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거든요. 회사 그만두기 2년 전에는 여름 휴가도 못갔고, 아예 자기 것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게를 시작하게 되었죠.”
Q3. 빵도 좋아하셨고, 다른 요리도 좋아하셨는데 ‘카레’를 메인메뉴로 선택하신 점이 궁금합니다
“‘일본의 서양요리’라는 특강이 있었어요. 일본에서 만든 서양요리가 주제였는데 거기서 ‘호텔 카레’라는게 있었어요. ‘호텔카레’가 일본에서는 ‘구풍(歐風)카레'라고 해서, 약간 유럽 스타일의 카레라고 그런 부류가 있거든요. 밀가루와 향신료로 루를 만들어서 소어깨뼈 육수를 넣어서 만드는 카레인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파는데는 없는 것 같아요. 가게에서 가끔 어쩌다가 ‘구라파카레'라고 한 번씩 만들어서 내거든요? 1년에 몇 번 안내요, 만들 때 손이 너무 많이 가서. 1년에 한 두 번 정도 나오나?”“가게 시작할 당시만 해도 향신료로 하는 카레가게가 많이 없었어요. 대부분 일본 고형 루를 많이 쓰잖아요? 이제 향신료로 하면, 향신료 쓰는 곳은 인도 현지 사람들이 하는 가게밖에 없으니까 좋은 틈새 시장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아직 향신료가 한국 사람들한테 익숙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Q4. 매일 메뉴가 바뀌는 점이 인상적인데,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가게가 대로변이고, 사람이 많으면 단일메뉴 하나로 승부를 봐도 되는데, 골목이고 유동인구도 많지 않으니까 단일메뉴로 손님을 끌기에는 한계가 있고요. 하루하루 메뉴가 바뀌는 시스템이고, 만드는 제 입장에서도 매일 똑같은 것만 만들면 질리잖아요, 먹는 사람도 질리고. 혼자 거의 준비하고 그러다보니까 메뉴가 많을 수가 없어요. 하루 두 세가지 기준으로, 대신에 매일 메뉴를 변경하는 구조가 되었죠.”
Q5. 메뉴를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해지네요.
“카레 같은 경우에, 하루 두 가지 메뉴가 있다면, 하나는 일단 크리미한게 있으면, 크리미하지 않은게 있거나, 토마토에 산미가 있는 카레거나, 토마토가 없는 갈색 계열 카레거나. 약간 상반된 느낌으로 가거든요? 아니면 아예 카레 하나가 있을 때, 다른 정식 카레가 있거나, 그런 구조로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예 일주일치를 공지해서 운영했었는데, 그것도 조금 힘들더라구요. 그 날 조금 봐서, 몸이 좀 피곤하고 그러면 다음날 쉬운 거 만들거나.”
Q6. 여러가지 메뉴 중에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좋아하는게, ‘버터치킨카레’랑 ‘카츠카레’,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메뉴는 말씀 드렸던 ‘구라파카레’랑, ‘산넘어산 포크카레’라고 있어요. 이것도 약간 양식 스타일 카레인데 자주는 못해요, 이것도 손이 많이 가서. 개인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카레는 맛으로만 봤을때는 좋아하긴 하는데, 그만큼 시간에 쫒기고 그래서.”
Q7. 그럼에도 혼자서 가게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SNS계정이름도 ‘lonely_table’이시고요.
“매출 자체가 고정적이지가 않아요. 동네가 유동인구가 적은데다가 가게가 골목 안에 있고. 카레가 사람들이 즐겨찾는 메뉴가 아니라서. 항상 사람이 많으면 직원을 두겠죠. 그런게 아니라서 그냥 점심, 저녁 알바생 있고, 혼자 하는 그런 구조죠. 손님이 가늠이 안되요. 어떤 날은 진짜 많고, 어떤 날은 진짜 없고.”
Q8. 공기식당만의 디테일, 작은 배려, 사소하지만 강력한 전략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신경 쓰는 거는 저거에요 저거(정숙).혼밥 손님들이 되게 많거든요. 근데 점심 때 직장인들 중에 가끔 그러시는데 이제 뭐 세네분 와서 진짜 시끄럽게 떠들다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화 내용이 주방에서도 다 들리거든요. 근데 심지어 옆에 앉거나 근처에 앉은 분들은 그게 되게 피해인거거든요. 그래서 항상 메뉴판에도 ‘협소한 공간이오니 작은 소리로 대화 부탁드립니다’, 빨간펜으로 적어두고 그러는데도 그게 안지켜질 때가 많아요. 그냥 가게에 와서 막 이렇게 소리지르는 손님도 있고, 한번은 너무 심하면 작은 소리로 대화해달라고 부탁드리는데, 한 번은 그걸로 다툼이 일어난 적도 있었어요. 그거랑 또 신경 쓰는 거는, 조금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색다른 카레를 내와야겠다, 그거. 카레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걸 좋아할 때도 있는데, 카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싫어하는 경우도 있어요.”
Q9. 요리하는 과정에서 신경 쓰시는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향신료만으로 만드는 거. 그래서 가게는 그 고형카레 루가 없어요. 오로지 향신료로만. 베이스는 인도 카레 베이스인데, 일본 정미소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거기에 간장을 넣는 경우도 있고. 베이스는 인도지만, 조금씩 다른 느낌의 카레인거죠. 그래서 너무 인도 쪽으로 만들면 사람들 입맛에 안맞고 그럴 것 같아서 조금은 일본스러운 느낌도 있고, 그런 느낌의 카레를 만들고 있죠. ‘카다몬’이라고 씨앗같은게 있는데, 그게 카레 안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이게 씹으면 처음 먹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맛이 팍 터지기 때문에, 그냥 걷어내고 먹으면 되거든요. 가끔 그거 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세요. 먹어도 되는데 이건 그냥 향을 내기 위해서 넣는 거기 때문에. 약간 그런 것들이 좀 있죠.”
Q10. 가게 곳곳에 재미있는 요소들이 눈에 띕니다. 카레수집카드는 어떻게 두게 된 건가요?
“근처 회사에 다니던 친구였는데 손님이었죠. 되게 단골. 카레를 그렇게 안먹던 친구였는데 가게에서 카레를 먹기 시작하면서, 이 친구가 카레에 중독되기 시작하고, 독립출판물도 만들고. 그 친구가 만든거거든요. 가게에도 비치가 되어있어요. ‘카레수집카드’라고 해서, 자기가 먹은 카레의 맛을 적는 공간도 있고요. 고양이 그림도 자주 오던 손님 분이 만드는게 있어서. 다 처음에는 손님으로 왔었죠.”
Q11. 여담이지만, 이처럼 SNS 계정이나 가게 곳곳에서 고양이에 대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사장님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밤에 길고양이들 많이 와요. 밤되면 사람들이 안다니거든요. 문 열어놓고 있으면 가끔 고양이가 들어오고 그래서. 한 2년 전 봄, 그때 ‘하루’라는 애가 왔었는데, 걔가 밥 먹으러 오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다른 고양이들도 오다가. 그러다가 ‘미로’라는 애가, 걔는 진짜 집고양이처럼 만져도 가만히 있고 그랬어요. 가게에서 거의 키우다시피 한 고양이었는데 작년 2월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어요. 그 날 이후로 안보여서. 지금은 ‘코리’라는 얘가 찾아와요. ‘코리’는 ‘코리앤더’라는 향신료에서 따왔어요.”
Q12. 서촌에는 공기식당 이외에도 작은 가게들이 많이 있는데요, 앞으로 가게들이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은 어떤건가요?
“여기 다들 가게들이 교류 그런게 없더라구요. 그래서 상인들끼리 교류회 같은게 있으면 주말에 플리마켓을 한다거나, 가게의 특색있는 물건 하나씩 내와서 팔거나. 서로 그런게 없다보니까 서로 자기 가게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약간 서로 가게들이 떨어져있고 그래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Q13. 끝으로
“동네에 사람들이 더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주말에는 많은데 평일에는 외지인들이 너무 없다보니까. 외지인들이 많이 와야 가게들이 오래 가는데, 너무 외지인들이 끊기다보니까요.”
동네에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 길게 가는 가게가 없어진다. ‘공기식당'은 겉보기에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기교와는 거리가 먼 공간입니다. 작고 정적이며, 차분한 공간 안에서 ‘공기공단'의 음악처럼 누구든지 조용히 카레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사장님의 배려. 그리고 매일 다른 종류의 카레를 맛볼 수 있게 노력하는 점이 ‘공기식당'이 4년째 추구하는 작지만 강력한 디테일이었습니다. 언젠가 꼭 기회가 된다면 ‘공기공단'의 음악을 들으며 사장님이 자부하신 ‘구라파카레'를 맛봐야할 것 같습니다.
글 | 서촌유희 사진 | 서촌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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