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 작가님(@o.x.u)의 작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10월 진행 된 '서촌도감'에서의 전시 '자연의 감각'을 통해서였다. 오수 작가님의 실과, 오선주 작가님의 도자기는 서로 다른 색채와 질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 자연을 닮아 조화로웠고, 서촌도감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함께 잘 어우러져 큰 인상을 남겼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 마침 오수 작가님께서 올해 서촌으로 거처를 옮기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었다. 문득 작가님의 안부와 이야기들이 궁금해졌고,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 즈음 서촌도감에 함께 둘러 앉아 작가님의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님에 대한 짧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각예술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오수라고 합니다.
제가 처음 작가님의 작업을 알게 된 게 1년 전쯤 서촌도감에서 진행한 전시, ‘자연의 감각'을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작가님과 오선주 작가님의 작업으로 구성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전시를 진행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작년 여름 ‘서촌도감’이라는 공간이 생긴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후에 오선주 도예가와 같이 2인전을 준비해주시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오갔어요. 당시 봤던 선주씨의 작업들이 너무 좋았고 흔쾌히 같이하겠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나요. ‘자연의 감각’이라는 주제의 제안을 통해서 선주씨와 협업하게 되었습니다. 선주작가님과 저의 작업의 모티브가 되는 가장 큰 포인트가 자연이었고 그런 부분을 기획자분들이 읽어 내주신 것 같아요.
자연의 질감과 청명함을 조화롭게 느낄 수 있었던 오수 작가님과 오선주 작가님의 2인전, 자연의 감각.
그때 당시 진행하셨던 작업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단단하고 부드러운, 서로 다른 두 가지 매체가 어떻게 섞이고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단순히 선주씨가 가지고 있던 도자기나 깨진 그릇 같은 걸 제가 가지고 와서 뭔가를 씌워보고 덮어보기도 하고요. 또 저희가 서로 자연을 보는 시각이 너무도 달랐던 기억이 나요. 선주작가님은 자연에서 정제된 요소나 색상을 가지고 왔고 저는 선명하다 못해 인공적일 만큼 채도가 높은 자연들 혹은 나뭇잎이나 자연물들을 확대하면 보이는 어떤 프렉탈 구조를 가지고 작업했어요. 함께 한 작업으로는 선주작가님의 깨진 잔을 붙인 작업, 도자기에 옷을 씌운 작업, 흙으로 만든 돌에 초록을 씌운 작업등이 있어요.
작가님 앞에 놓인 것들이 그렇게 진행된 작품들이군요.
네, 이건 선주씨의 깨진 잔을 이끼와 함께 붙인 작업입니다. 니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잦은 이동을 하며 느낀 무거운 짐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를 이동하며 점점 더 가벼워 지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던 때에 친구에게 우연히 니팅 작업을 배우게 되었고 작업의 형태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무거운 재료들을 정리하고 사용하던 카메라도 다 팔아버렸습니다. 가벼운 실과 바늘을 늘 가방에 들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작업했어요. 정착하지 못해 느끼는 부유감과 불안감을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안정적인 행위를 통해서 떨쳐 내기도 하면서요.
또, 이사를 많이 하는 탓에 좋아하는 식물을 키울 수 없었고 연약한 식물을 옮겨 다닐 수 없어서 가짜 식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선주 작가님도 저를 만나기 전에 남는 흙으로 돌을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그런 지점들이 나중에 서로 만났을 때 함께 잘 어우러져서 돌 위에 자연을 그리는 ‘영원한 초록’ 작업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선주씨의 깨진 잔을 이끼와 함께 붙인 작업입니다."
각기 다른 재료가 서로 만나 자연의 모습을 조화롭게 표현해냈다.
앞서 말씀주신 ‘니팅’ 이라는 작업에 대해서 사실 대부분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니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거운 짐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데요, 프랑스에 사는 당시 친구에게 뜨개질을 배우면서 문득 이 작업이라 면 여기저기 재료를 가지고 다니면서 내가 원하는 때에 언제든 작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을 그리려면 종이, 물감, 붓을 챙겨야 하고 때에 따라 물이나 기름이 필요합니다. 흙 작업은 더 큰 공간을 요구하기도 하구요. 코바늘 작업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가벼운 실 몇 개를 가방에 챙기고 여기저기 오가며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편리하면서도 제가 만들고 싶은 것들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거죠.
(왼) 산책 코스터 - 여행지와 일상에서 매일같이 걷는 걸음의 궤적과 돌고돌아 마주하는 산책길을 닮은 코스터 시리즈.
(오) 초록패턴 - 자연을 조금 더 가까이서 바라보면 발견 할 수 있는 것들.
그렇다면 이전에는 어떤 방식의 작업을 해오셨었나요?
이전에는 노마드ㆍ흔적ㆍ기록이라는 타이틀로 ‘내가 어떤 공간에 존재했다는 점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으로 이동보다는 흔적에 초점을 맞춘 작업들을 풀어냈어요. 개인의 역사가 깃든 물건들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변형하기도 하고 지금보다는 훨씬 무겁고 단단한 매체를 사용했습니다. 최근 니팅 작업을 하면서 느낀 한계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직물이 아주 평평하다는 점이었어요. 그러다 아주 가벼운 덩어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솜을 이용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다음 단계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동을 하다 보니 무거운 매체에서 가벼운 매체로 옮겨와 니팅 작업을 하게 됐고, 니팅 작업을 하다 보니 새로운 한계점을 만나 또 다른 매체를 사용하게 되는 것처럼요.
주 재료인 실은 주로 어떻게 구하시나요?
동대문과 남대문에서 구매합니다. 또 해외여행에서 마음에 드는 실을 발견하면 많이 사서 쟁여놓아요. 주로 초록색 실을 찾고 또 동물의 털 같은 느낌의 실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그런 소재로부터 어떤 생명력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당시 실로 이끼를 표현하여 돌에 감쌌던 작품, ‘영원한 초록'도 인상적이었지만 저는 지난 전시 때 한편에 놓여있던 ‘마스크’도 유독 기억에 남아요. 약간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싶어요.
마스크는 노마드 작업을 시작하면서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유목민들이 착용하는 오브제이기도 하고 또 장식적인 요소가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책을 보다가 알 수 없는 동물의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때 받은 강력한 인상도 작업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탈을 쓴 사람들은 늘 정지하지 않고 움직인다는 점이 저를 매료시켰고 이후에 내가 직접 마스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며 마스크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작업의 출발점이었어요. 마스크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해보고 싶어요. 마스크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어떤 접근방식으로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작업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아직은 더 궁금하고 찾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은 상황이에요.
Natural pattern Mask 01, 02 - ‘자연패턴’ 마스크는 노마드와 서커스, 대자연속에서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며 사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제작 되었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업하는 공간과 일과가 더욱 궁금해져요. 작업 공간에 대한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프리랜서이다 보니 다른 일정과 병행해야 하는 탓에 개인 작업 일정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불규칙적이고 틈만 나면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무언가를 하다가 잘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밤새며 작업하는 편이구요. 작업하다가 잘 될 때는 이걸 어떻게든 놓치지 않고 계속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 것 같아요. 작업실은 따로 없고 사는 곳에서 작업하고 있어요. 작업실과 사는 곳이 분리되면 불안하기도 하고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면 즉각적으로 메모하거나 만들어야 해서 무조건 제가 손 닿을 수 있는 곳에 재료들이 있어야 해요. 실과 바늘을 늘 챙겨다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작가님께서 직접 촬영해주신 작가님의 방. 다양한 재료들 사이 강렬한 녹색이 눈에 띈다.
작가님께서는 서촌에서 거주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서촌에 오기 전 살던 곳에서 갑자기 나와야 하는 상황이 생겼어요. 급하게 지낼 곳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청운광산’이라는 사회주택 링크를 보내주었고 어쩌다 보니 올해 1월부터 살고 있습니다. 우연히 서촌에 살게 되었지만 이곳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작년 서촌도감에서 전시를 하며 만난 사람들과 익숙한 장소들 때문인 것 같아요.
앞으로 준비중인 전시와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노마드와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을 연구하는 작업들을 계속해 갈 예정입니다. 9월 공예주간 전시에 참여할 예정이고요, 최근 드로잉 작업을 다시 하기 시작했는데 아마 하반기에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주작가님과도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작업들을 진행 중 입니다. 좋은 소식이 생긴다면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글 | 서촌유희 사진 | 서촌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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