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다시 알리고는 했습니다. 철수가 영희에게 “저기 떡볶이 양도 많고 진짜 맛있어! 학교 끝나면 나랑 같이 갈래?” 하는 귀여운 모습처럼 말이죠.
“에디션덴마크”는 어른의 방법으로 좋은 것을 알려주고 제안하는 중입니다. 덴마크에서 태어난 요핸과 3년의 시간을 그 곳에서 지낸 지은. 두 사람은 좋아하게 된 것들을 가능한 멀리,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꿀, 티, 커피, 그리고 가구까지. 좋아하는 이유를 듣다 보면 그것들을 함께 좋아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Yoohee-Object의 두 번째. 제대로 만드는 물건은 어떤 모습인지, 한국과 덴마크의 생각들을 겹쳐가며 얘기해보았습니다.
에디션덴마크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에디션덴마크는 저의 애인인 요핸과 제가 덴마크에 살다가 한국에 오면서 만들게 된 브랜드입니다. 덴마크인으로서 좋아하는 것과, 제가 덴마크에 살면서 한국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좋았던 것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어서 만들게 되었어요.
덴마크의 어떤 모습들이 좋았나요?
덴마크는 품질에 대해서 누가 보지 않더라도, 정확히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요. 인구가 작고 오랫동안 부유한 나라였던 것이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내 가족과 친구가 먹게 될 음식, 사용할 물건이기 때문에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덴마크 동네 슈퍼를 가보면 유기농 재료와 그렇지 않은 재료들의 가격이 비슷하고, 비싸지 않은 제철 과일과 당근마저 너무 맛있었어요. 외식보다는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신이 무얼 사오는지 생각을 해요. 조금 느리더라도 제대로 만들고, 식품에 대한 마음가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덴마크의 라이프스타일을 떠나오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 곳에서 다닌 직장도 재밌었고, 전반적인 생활이 좋고 편했지만 한편으로는 앞이 너무 뻔하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대 초반의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로 내린 선택으로 남은 여생을 보내는게 아쉬워,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덴마크 꿀을 한국에 소개하자'라는 생각으로 한국행을 결심했는데, 사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하고 현실화하는 과정을 알아보면서 또 쉽게 포기하게 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일단 1년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한국에 왔어요. 천연꿀은 보호관세가 붙어 수입이 쉽지 않았고, 무역이나 유통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게 막막했어요. 그런데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우고 여차저차 하다보니 또 내년 것을 주문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요핸과 함께 오는 것도 고심한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덴마크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어느 나라든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졸업하자마자 덴마크에 갔는데, 덴마크에 살다 보면 한국의 대표가 되는 때가 많았어요. 누군가에게는 제가 처음 만난 한국 사람일 수도 있고,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도 물어보는데, 내 나라지만 잘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반대로 덴마크에 3년 동안 지내며 덴마크의 문화, 언어, 일하는 방식 등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있었고, 덕분에 요핸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요핸도 저의 자라온 배경이라던가 한국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였어요. 지금은 요핸도, 저도 한국에서 사는 게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가장 첫 번째로 에디팅 된 제품이 꿀이에요. 꿀은 아직 다른 상품군에 비해 브랜드로서 정체성은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어떤 매력을 갖고 있나요?
덴마크에서 먹은 꿀은 정말 맛있었어요.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든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꿀은 꿀벌들이 꽃에서 따와서 만드는 자연의 산물이에요. 거기에 양봉이란 과정을 통해 꿀을 만드는데 생각보다 과정이 복잡해요.
예를 들어, 꿀벌은 꽃에서 꿀을 따오면 날갯짓으로 수분을 날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상태의 낮은 수분 함량을 만들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오래 걸리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아직 묽은 상태에서 꿀을 채취하고 인공적으로 가열을 시켜 수분을 날려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꿀의 영양소나 효소가 파괴되죠. 가열하지 않은 진짜 생꿀인지, 진드기 퇴치에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 방법을 사용하는 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이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꿀을 찾기 위해 덴마크 방방곡곡의 양봉가들을 찾아다녔어요.
그럼 덴마크에서도 꿀을 ‘제대로’ 만드는 브랜드를 만나기가 어려웠나요?
덴마크에는 큰 양봉 회사가 없어요. 큰 기업이 작은 양봉가들의 꿀을 사고, 가열하여 섞은 꿀로 상품을 만드는거예요. 꿀이 지역, 계절마다 모두 맛이 다른데, 그런 과정에서 맛이 똑같아지고 좋은 효소나 영양소들이 파괴돼요. 슈퍼마켓에 파는 꿀은 그렇게 좋은 꿀이 아니었어요. 작은 양봉가들은 판매 기술이 전문적이지 않아서 집 앞이나 동네 마켓 등에서만 팔고, 가족들과 먹곤 하는 게 기존의 방식이었어요. 꿀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모르니까 싼값에 큰 기업에 넘기고, 덴마크 꿀이 너무 비싸니까 저렴한 수입 꿀이 많아져 꿀을 못 팔게 되고. 이윤을 맞추기 위해 소규모 양봉가들의 좋은 꿀이 한 데 섞여 팔거나, 물량이 안되어서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모르는 문제들이 있었어요. 잘 아는 양봉가를 알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꿀을 먹는 통로가 단절되어 있어요.
대니시비키퍼스라는 브랜드를 직접 만들게 되신 계기가 되었을 것 같아요.
“대니시비키퍼스”라는 이름도 그런 부분들을 담고 있어요. 수요가 더 커진다면, 지금은 한 분과 일을 하지만 잘하는 작은 양봉가들을 지역별로 찾아가려 해요. 지역마다 다른 꽃이 피고, 날씨도 모두 달라 꿀의 맛도 제각각이에요. 예를 들어 봄꿀의 민티함 같은 것도 지금 생산되는 지역에서 조금만 떨어진 지역에서는 맛볼 수가 없어요. 덴마크 지역 각각의 특성을 살린 꿀을 선보이고 싶어요.
에디션덴마크에 오면 작은 공간이지만 다양한 제품군을 볼 수 있어요. 꿀과 차, 커피와 가구. 어떻게 만들어진 조합인가요?
꿀과 함께 지속 가능하고 투명하게 잘 만든, 믿을 수 있는 물건들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들을 했어요. 또 그 안에 담긴 덴마크의 가치관도 함께 소개할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꿀을 가져오면서, 제가 집에서 매일같이 마셨던 티를 함께 가져오고, 요핸이 좋아하는 로스터리카페의 커피를 가져왔어요. 제가 2013년에 처음 덴마크에 갔을 때도, 주변 덴마크 친구들이 추천했던 카페가 커피콜렉티브에요. 커피 맛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농장에서 한 잔의 커피가 될 때까지 전 과정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해요. 얼마동안 지속해왔고, 얼마에 사 왔고, 로스팅 시 배출하는 CO2를 측정해서 수치화하고. 재생에너지로만 매장을 운영하고 패키지도 재생이 가능하게 해요.
ⓒeditiondenmark.com
커피컬렉티브는 커피 농부들이 프랑스 와이너리 농부들처럼 위상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갖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잘 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과정에서 퀄리티에 대한 신경을 엄청 써야 가능해요. 대신에 노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투명하게 과정들을 공개해요. 그런데 이걸 크게 홍보하지 않아요. 조금 당연한 움직임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A.C 퍼티스 티핸들도 티백을 옥수수전분으로 만들고, 비닐과 코팅도 친환경 소재로 바꿔 생분해, 재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계속 바꾸어나가고 있어요. 북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런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원자력발전소가 아닌 풍력발전소, 자동차 대신 자전거. 그런 행동들이 몸에 배어 있어요. 기반이 다져있는 것 같아요. 특히 덴마크는 2050년까지 전체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바꾼다는 목표가 있어요.*
*덴마크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0년 현재 70%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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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이란 단어가 환경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언급될 때도 많은데, 한 사람이 생계를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이어나가는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짚어주는 것 같습니다. 스카게락이란 브랜드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스카게락이란 브랜드도 겉으로만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곳이 아닌 모든 과정에서 신경 써서 만들어진 가구, 더 많은 사람들이 쓸수록 세상에 이로운 선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자 해요. 특히 가구라는 게 나무를 베서 만드는 것이고, 사실 친환경이랑은 거리가 멀어요. 나무를 어디서 베어 오는지, 숲은 어떻게 관리가 되는지 살펴봐요. 숲이 자생할 수 있는 속도보다 나무를 베는 속도가 빠르면 숲은 사라지게 돼요. 그 속도를 조절하여 숲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인증받은 숲에서 벤 나무들만 쓰자는 목표로 퍼센트를 늘려왔고, 지금은 70퍼센트 정도 되었어요.
또한 덴마크는 제조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아웃소싱을 통해 진행해요.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티크 재질을 가공하는 공장이 있다면, 해당 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임금을 받아야 잘 살 수 있는지 서칭을 해요. 그런 기준들을 아주 많이 세워놓고, 매년 지속가능서 보고서를 발행하면서 만드는 사람과 환경에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해요. 스카게락과 커피콜렉티브는 모두 비코프 인증*을 받은 브랜드에요.
*비코프(B corp)인증이란 사회적/환경적 성과, 공공 투명성 및 법적 책임 등이 기업의 이윤창출과 균형을 맞춘 기업에게 주는 인증제도이다. 예로 파타고니아가 있다.
여러 브랜드들이 지속가능성, 착한 소비 등 유사한 발걸음을 하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단순한 이미지인지 구분하는 것도, 올바른 소비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스카게락이 보여주는 오래가는 디자인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어요.
‘롱라스팅 디자인’이라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심미적 측면이에요. 대게 가구의 디자인이란 트렌드가 있고 질리기도 하는데, 여기는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추구해요. 지금 생산되는 제품들 중에서도 7-80년대 디자인 제품을 지금 그대로 생산하고 있어요. 두 번째는 물리적 지속성이에요. 원목 100%로 튼튼하게 만들어 쉽게 망가지지 않고 오래 쓸 수 있게 해줘요. 한 에피소드로 제품을 납품한 호텔에서 불이 난 적이 있는데, 티크 나무로 만들어져 오일에 강하다 보니 의자들이 완전히 불에 타지 않고 살아 남았어요. 당시 전량 회수를 해서 리퍼비시를 하여 다시 쓸 수 있게 했다고 해요. 또, 트리트먼트 가이드라는 것을 주는데 낡으면 버리고 또 사는 것이 아니라, 계속 관리를 잘해서 오래 써야 한다고 말해요. 물건이 30년 후에라도 상하게 된다면 리퍼비시를 해주는, 버리는 단계가 보통의 제품들 보다 훨씬 뒤에 있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로컬의 지속성을 고민하는 서촌이라는 곳과 에디션덴마크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곧 가을이 되어 서촌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제품은 무엇인가요?
쇼룸을 오셔서 덴마크의 여유를 즐겨보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맛있는 거 먹으면 행복하잖아요. 저희가 서빙하는 것들은 단순해요. 라테도 없고, 아이스크림이나 시럽이 들어간 것도 없어요. 대신 좋은 커피 원두를 사용해서 단순한데도 맛있는, 커피가 이런 맛이 날 수가 있나? 하는 경험을 주고 싶어요. 좋은 것을 한 번 먹어보면 경험이 확장되잖아요. 좋은 재료를 듬뿍 넣어 만든 수제 맥주를 마시다보면 평소에 잘 마시던 편의점 맥주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처럼요.(웃음)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집에 가져가서도 먹으면서 덴마크의 여유를 즐겨보면 좋겠어요.
지금까지의 한국 또는 서촌에서의 생활은 어떠신가요? (아래는 덴마크에서 온 요핸의 생각이 주로 작성되었습니다)
요핸은 가족이나 친구를 볼 수 없으니까 외로움도 있고, 한국어가 서툴어 일상에서의 어려움이 있지만 한국을 좋아해요. 덴마크의 여유가 좋기도 하지만, 일을 할 때는 가끔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급한 일이지만 전화나 문자로 하지 않고 메일 답장이 오길 기다린다던가, 일을 할 때는 시간이 여유롭게 흐르는 것이 오히려 힘들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은 “왜 안돼?”, “시간 없어도 할 수 있어!” 그런 마인드가 있잖아요. 첫 런칭이 리빙페어 때였는데, 되게 큰 행사였고 3주가 남았는데도 불가능해 보였지만 또 해내고. 이런 한국의 마인드 셋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분야를 가로지르는 에디션덴마크의 다음이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첫번째는 더욱 탄탄한 브랜드가 되자. 지금까지는 확장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당분간은 저희가 벌려놓은 일들을 더 탄탄하게 다져나가려고해요. 새로운 팀 멤버도 채용하는 중이고요. 두번째는 좀 더 특별한 물건들을 큐레이션하려고해요. 최근에는 처음 본 순간부터 제 마음속 가장 아름다운 의자로 자리잡은 엑스라인체어를 구해오기도 했고,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테리어 매거진인 아크저널도 들여오고 있고요 그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덴마크 디자이너의 작업, 오브제 등을 더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글 | 서촌유희 사진 | 서촌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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