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경계 없이 가까웠던 누군가와 2미터씩 떨어져 지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벌어진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에도 여백이 생겼다. 헛헛함이 들기도 하지만 여태껏 너무 빽빽이 지낸 것은 아니었나. 도리어 안도의 한숨을 돌려본다.
사람들은 언택트 시대를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보내고 있다. 바닥과 벽, 천장으로 꽉 막힌 공간에서 일생의 80%를 지내던 사람들은 문밖을 나서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욕심내어 평수를 늘려보아도 왠지 모르게 갑갑했던 집에서 나와 선조들이 그랬듯이 안팎을 노니는 방법을 배워가는 듯하다. 더 큰 집을 갖고 싶어 확장했던 베란다는 ‘안'에만 머물게 한다는 것을 깨닫자, 다시 테라스와 발코니를 위해 더 비싼 집을 찾아 헤매는 기이한 현상도 보인다.
옛사람들은 바람과 햇빛의 즐거움을 들이기 위해 툇마루와 들문을 만들어 놓고, 동네에는 누각을 세워 밖과 단절되지 않으려 무척이나 애써왔다. 서촌의 골목을 걸으면 보이는 통인 시장 앞 누각. 이곳에도 그런 바람이 들어 있는 듯하다. 마루에 앉아보니 넓은 하늘과 투박하지만 자연스러운 골목길이 한눈에 보인다. 여름이 끝나가고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에 기분이 좋다.
누각을 중심으로 누상동과 누하동이 나누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각 위에 있으면 누상동, 아래에 있으면 누하동이라 붙여진 마을 이름. 단순한 것에 마음이 가는 요즘이다. 그런 탓인지 누각에 머물다 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은 세상 이야기가 들려온다. 할머니들은 오늘은 몇 점 내기 화투를 칠지, 할아버지들은 막걸리 안주는 뭐로 사 올지 인생무상한 대화들이 오간다. 신선놀음이 따로 있을까, 소박해도 즐거우면 그만이다.
*누하동과 누상동 : 이곳에 광해군 때 세운 인경궁의 누각이 있었다고 전하는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깊은 산이나 강가에 가면 산수가 빼어난 곳에는 누각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얼마나 정확하고 완벽한 장소에 있는지, 안목에 반해버리곤 한다. 술 한 잔에 시 한 줄을 읊고, 자연 멍을 때리며 유희하던 선비들의 하루가 새삼 부럽다. 누각을 집 안으로 들이기도 하였는데, 한옥의 누마루와 대청을 보면 알 수 있다. 방과 방 사이를 바깥 공간으로 연결하여 집이 자연으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게 한 것이다. 뒤늦게서야 아웃도어의 풍류를 깨닫고 캠핑과 서핑으로 ‘밖'을 즐기는 우리의 모습이 사치스럽지만은 않다고 애써 말해 본다.
건너편에 서서 누각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손녀와 걷다 쉬어가는 할아버지, 아들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저씨, 딸과 전화를 하는 아주머니, 엄마가 사주는 도넛을 먹는 아이. 언택트 시대 속에도 끊을 수 없는 고유한 관계들이 눈에 보였다. 마스크로 가려져도 보이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기억 속에 쌓여 가고 있었다. 누군가 그리울 때면 잠시 이곳에 앉아 전화 너머로 위로가 될 목소리를 들어보는 여유를 부려보는 건 어떨까.
글 | 서촌유희 사진 | 서촌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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