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게 드나들던 상점들이 있는 골목길을 지나 통인 시장을 넘어서면 조용한 주택 골목이 나온다. 나무로 된 대문들이 어깨동무 한 이웃들처럼 모여 있다. 갈림길의 두 번째 대문, ‘달재사라서로'라고 적혀있는 초록색 문판이 반겨주는 문을 두드려 보았다. 곧 서촌 살이 1주년을 맞이하게 될 두 부부. 달재, 사라님과 늘어놓은 오후의 수다를 기록했다.

몇 년도에 지어진 집인가요?

달 : 60년대에 지어졌어요. 전통 한옥은 아니고 도시 한옥이라고 정세권이 공급했던 한옥류의 하나에요. 지금으로 치면 아파트와 똑같은 거죠. 해방 이후에 집이 없으니까 북촌, 서촌, 종로뿐만 아니라 강북 중심으로 지어졌어요. 강남은 그때 논밭이었어요. 


몇 번째로 이사한 집인가요?

사 : 결혼하고는 처음 이사했어요. 두 번째 집이에요. 신혼집은 신림동에 제가 살았던 복층형 단독주택에 살았었고, 결혼하고는 신혼집으로 서촌에 오래된 빌라를 사려고 몇 개월 동안 계속 다녔어요. 그러던 중 한옥인데 전세가 나왔다는 거예요. 전세가 귀하잖아요. 너무 궁금한 거예요. 저도 한옥에 안 살아봤고 보고 싶어 연락드렸는데, 마음에 무척 들어서 그날 바로 계약을 했어요.

달 : 모든 집이 다 그랬던 것 같아요. 신림동 집도 그날 바로 계약금을 넣었었고. 원래는 옥인연립을 들어가서 살아보려고 했는데, 옆에 산도 있고. 수성동계곡 바로 앞에 있는 그곳이요. 


사 : 그곳이 아주 오래된 연립인데, 정확히 기술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듣기로는 한 채 한 채가 단독주택처럼 골조가 튼튼하데요. 한 집 한 집 개성있는 집이 많더라고요. 저희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서 알아봤었어요. 매물도 잘 안 나오는데, 저희가 원한 건, 거기가  맨 위층을 터서 천장을 높일 수가 있어요. 저희가 맨 위층을 선호했었고, 전망이 조금 나왔으면 해서 몇 개월 동안 계속 고르고 골랐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1층에는 오래 사신 분이 계셨어요. 빌라 앞 공용공간이 있어요. 그곳에 텃밭도 일구고, 개집도 짓고, 큰 강아지도 키우시고, 어떤 집은 데크를 놔두고 고기도 구워 먹고, 뒤쪽에 자기 집으로 바로 가는 문을 만들어두기도 해요. 그래서 빌라 사이사이를 보면 재밌어요. 어느 집은 꽃밭이 있고, 장독이 가득 있고.

사 : 원래 이 동네는 학생 때부터 관심 있었고, 집을 알아보면서 아파트에 살기 싫었고, 아파트 단지 없는 지역이 서울에서 찾기 힘들어요. 그런데 서촌은 지구단위 계획으로 묶여 있어서 4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어요. 우리 돈으로 단독주택은 못 사도, 오래된 빌라들은 가격을 맞힐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동네에 살고 싶었어요. 


동네만 고집해서 오신 건가요? 아니면 복층구조 집에 살면서 답답한 게 있었나요?

사 : 서촌이 좋아서 왔어요. 서촌지역만 보러 다녔어요. 다른 곳 안가고. 원래 살고 있던 신림동 쪽에 다세대 주택이 많이 있어요. 그런 곳으로 알아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서촌을 가자!” 하면서, 그날부터 서촌을 발품 팔기 시작해서, 옥인연립부터 허물어져 가는 집도 보았는데, 집은 그냥 인연인 것 같아요. 지금 1년 정도 살았는데, 나름 불편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달 : 아파트는 싫어하고, 단독주택이나 주거형식을 추구하는데, 여기를 찾고자 찾은 건 아니고, 그런 집들이 어딨나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여기를 찾게 된 것 같아요. 다음 집은 또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 : 여기 오래 있고 싶은데. 다음 집도 이 동네 안에서 찾을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거든요. 처음으로 우리 동네 같은 곳에 사는 것 같아요.


달 : 우리 동네 같은 게 아니라, 열심히 돌아다녀서, 주민분들하고 친해진 것 같아. 주민분 맞지?


사: 주민인 분도 계신 거죠. 


달 : 좋아하는 것들이 주변에 많다 보니까, 더 애정이 많은 것 같아요. 이사 오면서, 아내가 쉬고 있거든요. 그 시기가 맞물렸던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쉬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사 : 여기 오게 되면서, 원래 추구하는 것도 약간 그런 성향이 있었지만, 직장을 다시 선택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10년 가까이 원래 해오던 일을 버리고, 전혀 다른 분야로 가게 되었어요.

여기에 살게 되면서 우리 문화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차와 미술사 수업도 듣고, 동네 탐방도 여러 번 해보고 그러다 보니  우리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실제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다음 달부터 출근해요!  


달재님도 혹시 서촌에 오게 되면서 달라진 것들이 있으신가요?

달 : 아내를 학교에서 만났어요. 제가 공부한 건 이런 역사에 대한 것이고, 아내는 도시 개발에 관한 공부를 했어요. 종로에 머물 일이 많았어요. 역사 보전에 대한 일로 학교에서 여기까지 걸어보기도 하고, 종로의 인사동이나 곳곳에서 많은 연구를 했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파트에 살아본 기억도 많지 않아요. 서촌이란 곳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가자고 하니까. 그래 가자. 그런데 우리가 갈 수 있을까? 하다가 그래 이 정도면 되겠네. 해서 왔어요. 

저도 여기 와서 테니스를 시작했는데, 매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어요. 어르신들을 모셔가면서, 제가 막내거든요. 생각보다 연령대가 높아서 가야 하나? 했는데.


사 : 젊어서 받아준 거에요.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해서. 


달 : 어제도 7시 넘어서 왔어요. 해가 져야 끝나요. 

각자 서촌에서 주말을 가득 채워 보내시는 것 같아요.

사 : 동네 자체가 이벤트가 많잖아요. 강연, 프로그램, 답사, 마켓, 매주 스케줄이 생겨요.

자연스럽게 의식주를 동네에서 해결하다 보면 백화점에 갔을 때 살 게 없어요. 물건들이 눈에 안 들어와요. 그런 경험을 최근에 했어요. 


달 : 이사 오기 전까지만 해도 코스트코를 한 달에 한두 번은 갔는데, 이사 와서는 얼마 전에 처음 갔어요. 상품권 선물이 들어와서 백화점을 갔는데, 동네에서 옷도 사고 뭐도 하다 보니까, “이 가격이면 저기 가면 훨씬 더 좋은 게 있는데” 하고 상품권을 쓸 일이 없어요. 허탕 치고 온 적도 많아요. 운동 삼아 가는 거죠. 명동까지 왔다 갔다. 


사 : 동네에 ‘가정식 패브릭’이라는 좋아하는 가게가 있어요. 자연에 가까운 소재로 리빙, 의류 제품 등을 만들어 온라인 판매를 주로 하는 작은 가게인데, 마음에 드는 원피스가 온라인 샵에 올라오자마자 품절이 되어 사지 못한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에 작업실을 오픈하셔서 친구와 오픈 시간 전에 줄 서서 기다렸다가 1번, 2번으로 들어갔어요. 덕분에 품절된 원피스가 온라인 샵에 재입고 되기 전에 작업실에서 먼저 살 수 있었죠.


사 : ‘라마홈’이라는 곳에서는 리투아니아 린넨으로 다양한 제품들을 직접 만들어 판매도 하시고, 지구 사랑을 실천하게 만드는 착한 리빙 제품들 판매도 하세요. 가끔은 재미있는 기획도 하시죠. 사용하지 않는 생활 속 물건을 찾아 새 주인을 찾아주기도 했고, 토종작물을 판매하시기도 하고, 다양한 분들의 수집품이나 작품들을 보고 살 수 있는 기회도 종종 있어서 마치 작은 전시장 같아요. 저희는 ‘라마홈’에서 커튼도 맞춤 제작했어요. 한옥이라 일반적인 사이즈의 커튼을 사용하기 어렵기도 했고, 오빠가 마음에 들어 하는 패브릭이 있어서 부탁을 드렸더니 정말 공들여서 예쁘게 만들어주셨죠. 지금은 가방 제작도 부탁드린 상태인데, 언제 완성될지는 미지수에요. (웃음)


달 : 저희는 ‘옥인다실’에도 자주 가요. 항상 열려있는 곳은 아닌데, 찻집을 오픈할까 고민 중이라고 하셔서 열심히 압박하고 있어요. 빨리 열어야 한다고.


사 : 아까 잠깐 얘기했던 ‘차와 미술사’ 수업을 ‘옥인다실’에서 들었어요. 그곳의 공간 자체도 좋아하지만 제가 ‘옥인다실’ 대표님도 엄청 좋아해서 그곳의 이벤트에는 가능하면 다 참여하고 있어요. (서촌에서의 소비에 대한 대화가 오가고)

사 : 오빠는 아직 아닌 것 같지만 저는 이곳에 살면서 소비 패턴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작가님들의 정성이 담긴 공예품을 소장하고, 오래 쓰는 편이 좋아졌어요.


(추가로 소개하는 동네 소비의 장)


사 : 이 꽃도 동네에서 샀어요. ‘꽃마담'이라는 작은 꽃집이 있는데, 데려온 지 2주도 넘은 꽃이 아직도 피어 있어요. 

제가 꽃에 대해 잘 모르는데, 한두 송이씩 소량 구매도 편히 할 수 있고, 꽃에 대해 잘 알려주세요. 처음에는 우리 집 대문에 걸어놓을 리스를 만들고 싶어서 ‘꽃마담’에 방문했었는데, 살아있는 생화를 대문에 걸어두면 바람에 날아가기도 하고,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작은 화분을 걸어두고 돌봐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권해주셔서 지금 대문에는 꽃이 아니라 화분이 걸려있어요. 꽃을 파시는 분이 꽃을 권하지 않으신 점과 늘 다정하게 꽃을 대하시는 모습에 반해서 그 뒤로는 늘 ‘꽃마담’에서 꽃을 구매하고 있어요.


두오모라는 이태리 가정식 식당은 음식에 철학이 담겨있는 느낌이라 정말 입과 마음이 즐거운 곳이에요. 그리고 간혹 마켓을 열기도 해요. 사용감은 있지만 예쁜 그릇이나 찻주전자를 저렴하게 구매하기도 했고, 채식 김치를 구매해서 먹어보기도 했어요. 이 동네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늘 즐겁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이건 ‘모호스페이스(이하 ‘모호’)’라는 곳에서 구매한 손 세정제와 인센스에요. 로프 인센스는 직접 만들어주신 고리에 걸어서 태우는 거예요. 연기가 어마어마하게 올라와요. 저는 화장품도 여기에서 상담받고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데 만족감이 높아요. ‘모호’는 ‘라마홈’과 더불어 제로웨이스트, 로우웨이스트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는 곳이에요.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하시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셔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모호해요. (웃음)


집에 있는 물건들 중심으로 동네에서의 소비에 관해 얘기를 하다 보니 이 정도이지, 자주 가는 카페, 서점, 맛집이나 제가 동네에서 배우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 얘기한다면 끝도 없을 거예요.

가장 좋아하는 공간 또는 시간이 있나요?

사 : 서쪽에 해 질 녘에 빛이 이쁘게 들거든요, 그럴 때 커튼을 걷고 인센스를 피우면 연기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요. 


달 : 제가 작년에 서울시 한옥과랑 일을 했었는데, 달력을 줬었어요. 해가 바뀌고 새 달력으로 바꾸려 하는데, 달력 속의 골목길이 너무 익숙한 거예요. 그때 달력의 테마가 북촌하고 서촌에 있는 한옥들을 그린 거였더라구요. 계동길도 있고 하지만, 한 골목길이 너무 익숙해서 봤더니, 지금 사는 우리 집인 거예요. 일 년 동안 책상 위에 놓여있던 달력 속의 집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반가웠어요. 


사 : 아 그리고, 제가 뜨개질을 한다고 했잖아요. 인스타에 뜨개질한걸 올렸는데, 어느 날 동네 분이 문 앞을 확인해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나가봤더니 대문에 실뭉치를 선물로 두고 가셨더라고요. 실이 엄청 많아졌어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제가 만약 다른 데 살았으면, 이런 오가는 정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라마홈 사장님께 생일 선물을 받은 것도 신기하고, 옥인다실 대표님은 길 가다가, 저랑 어울릴 것 같은 곳 사진 찍어 보내주시고, 그 가게 찾아서 인증 미션 하기로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인지 여쭤보려 했는데, 워낙 에피소드가 많으신 것 같아요. 

달 : 하나만 고르기는 힘든 것 같아요. 


사 :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집 보러 왔을 때.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제가 너무 오버해서 좋아했어요. 



“서촌에 살아보니 어떤가요?”라고 묻기도 전에 서촌에 대한 풍경을 쉴 새 없이 쏟아내 주셨다. 같은 복도라인에 살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내가 알고 있는 2020년의 모습에 새로운 풍경을 덮어주신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두 분에게 생길까.


글 | 서촌유희          사진 | 서촌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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