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는 단어는 참 많은 그림을 떠오르게 합니다. 뜨거운 햇볕, 바닷가, 매미소리, 땀방울, 장마 등등 말이죠. 강렬한 날씨 때문인지 돌아 보았을때 좀 더 인상깊은 기억으로 남는 계절인것 같습니다. 


<레에스티우>는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을 제일 좋아하는 요리인 스페인 요리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공간 안에 퍼지는 오렌지향과 산뜻한 인테리어, 그리고 커다란 수제 햄과 다양한 치즈가 마치 유럽의 어느 동네 식당에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주었습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진 가을날, 지나간 여름날을 떠올리며 레에스티우가 그리는 지중해의 여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레에스티우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레에스티우는 발렌시아어로 여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저희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하고 지중해가 제일 본 모습 같을 시기이기도 하죠. 초여름이 되면 푸릇한 채소들과 달콤한 열매들이 나오기 시작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지중해에 있을때 제일 요리하기 좋아하는 계절이에요. 레에스티우는 그런 따듯하고 싱그러운 지중해의 여름을 음식으로, 그리고 하나의 문화로 소개해드리기 위해 디자인된 공간입니다. 

 

지중해의 여름을 문화로 소개한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모습인지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일단, 되게 싱그러운 느낌이 있어요. 초여름이 재료나 막 그런 식재료들이 엄청 신선한 계절이거든요. 제가 스페인에 있을때 제가 요리하기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하고요. 가게 들어오시는 손님들이 되게 밝고 신선하고 그런 기운을 가져가셨으면 좋겠어서 저희가 준비한 프로젝트고 아직 진행형이에요. 어떤식으로 스페인의 그런 문화들을 한국분들한테 더 보여드릴 수 있지? 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첫 프로젝트인 셈이죠.

 

그럼 이후에 레에스티우 이외에 다른 장소나 매개체를 통해서 스페인 문화, 지중해 문화를 전파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거군요.

그렇죠. 저는 어쨌든 요리하는 사람이라 다른 장르의 요리들이나 이런것들을 통해서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여러 문화들 중에 ‘지중해 문화’를 소개하시는 것은 유럽에 계실 때 지중해 바닷가 부근에서 생활하셔서 일까요?

그 부근의 모든 바다가 지중해라고 할 수 있죠. 바닷가에서 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발렌시아에서 호세가 자라온 그 동네도 바닷가에서 20분~30분 거리에요. 되게 음식 문화가 다채로운 곳들이 바다에서 근접한 곳들이라 그런 이유도 있고, 그리고 지중해 라는게 지중해 바닷가만 지중해가 아니라 지중해가 걸친 나라들을 다 지중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저희가 관심있는 이탈리아나 아니면 프랑스, 당연히 스페인도 지중해에 걸쳐있는 나라들이고 뭐 심지어 그리스, 크로아티아 이런 곳들도 그렇죠. 그래서 저희가 사용하는 식재료들을 보게되면 스페인 뿐만이 아니라 뭐... 저희는 심지어 필로반죽도 써요. 터키 되게 좋아해서. 그래서 제가 이렇게 여행을 정말 많이 하면서 요리사로서 제일 감명 깊었던 국가들이 지중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느꼈죠.

 

레에스티우라는 이름에 굉장히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는것 같아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거의 10년 정도의 시간을 유럽요리에 집중해 왔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요리중 하나인 ‘Cocina Española’ 를 여러 해 동안 마음에만 품고 있었는데요, 작년 봄부터 오랫동안 스페인에 호세와 함께 머물며 큰 마음을 먹고 한국에 돌아와 올해 봄에 구현해낸게 레에스티우에요. 저는 원래는 돌아올 생각이 별로없었지만요 (웃음)

많은 유럽 요리문화 중에 특히 스페인 요리, Cocina Espanola에 빠져들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칠레에 되게 오래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쪽이 다 스페인어를 쓰는 국가들인데 스페인의 식민지였잖아요? 그래서 스페인의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았죠. 제가 청소년기에 스페인을 가보면서 그동안 제가 먹어왔던, 그리고 제가 살아왔던 많은 컬쳐의 근원을 보았고 그래서 조금 더 이해를 하게 되었고 더 빠져들게 된거죠. 이후에 제가 20살이 넘으면서 여행을 혼자 여기저기 다녔는데 저는 터키 갔을때도 되게 좋았어요. 왜냐하면 스페인 요리의 되게 많은 부분이 터키쪽이랑 연관이 있거든요. 아랍상인들이 다니던 실크로드의 종착점이 발렌시아란 말이에요? 이스탄불을 거쳐 발렌시아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통해서 실크 뿐만이 아니라 사프란이나 많은 동양 향신료들이 스페인으로 들어와 유럽으로 전파가 되게 되죠. 그 결과 발렌시아는 동서양의 컬처가 모두 존재하게 되었죠.

 

그래서 발렌시아가 빠에야의 고장이 된건가요? 사프란이 빠에야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그렇죠, 사프란도 그렇고 스페인에서 먹는 쌀 종자 자체가 동양쌀이거든요. Arroz Bomba 라고 하는 동그란, 근데 그 쌀이 유입된 경로가, 원래 중국이래요. 중국에서 한국, 일본, 그리고 일본에서 인도, 아랍 그리고 이제 그 사람들이 유럽으로 이동 시켰던거죠. 그래서 뭐 바스마띠, 이런 긴 쌀들을 스페인에서는 먹지 않고, 동양 쌀을 먹어요. 지금은 유전적으로 계속 개발을 해서 쌀이 알 자체가 저희가 한국에서 먹는거 보다 좀 더 크거든요. 그래도 종은 똑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한국분들이 스페인 음식을 좋아하시는 큰 이유가 그런 동양 터치가 가미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렇게 저는 요리를 학문적으로 분석을 하고 공부를 하다 보니 스페인 음식이 너무 재밌는거죠.

 

스페인, 특히 발렌시아가 동서양의 관문 역할을 하던 곳 중에 하나였다고 볼 수 있겠군요.

네, 아직도 발렌시아에는 실크시장이 있어요. 또 요리에서는 사프란을 사용하거나 이런 것들이 되게 동양적인 거거든요. 그런게 유럽에서 크게 자리 잡은게 발렌시아인거죠. 근데 제가 나이를 먹고 터키를 가서 요리하고 먹으면서 한달을 살다 왔거든요. 그때 또 다른 것들을 느꼈죠. 아랍 상인들이 터키를 거쳐 스페인으로 들어올 때 지중해라는 같은 바다를 통해서 온거잖아요?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때 지중해 요리의 더 깊은 근본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던거죠.  그래서 터키에 도착해서 아 얘네들이 여기서는 이 향신료를 이렇게 사용하는구나, 이 식재료를 이렇게 쓰는구나. 요리를 그냥 단순히 요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학문적으로 접근했을때 너무 재밌는거에요.

한 단계 더 깊숙히 탐구하시는 모습이 멋있으신것 같아요. 다음에 스페인에 가게 되면 새로운 시각으로 여행할 수 있을것 같아요. 특히 말씀하신 발렌시아에 가보고 싶어지네요.

네, 사실 스페인에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말고도 좋은 곳이 굉장히 많거든요. 남부 쪽도 그렇고 미식의 성지인 북부 쪽도 너무 좋구요. 스페인에서 제일 유명한 요리 포인트들이 북쪽에 산 세바스티안이 있고, 그리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발렌시아 있고 뭐 안달루시아도 있구요.

 

그럼 주로 계셨던 곳은 어느 지역인가요?

저는 원래 마드리드에 오래 있었고 히콘이라는 북쪽 동네에서도 오래 있었고... 그리고 호세랑 같이 있다 보면 산세바스티안, 이런 동네도 많이 다녔구요. 개인적으로는 팜플로나도 정말 좋아하고 음... 다 되게 좋아요. 저희는 가면 죽치고 있어요. 한 한달정도 그 동네에서 식재료나 요리나 여러 테크닉들 공부하고 뭐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죠.

 

호세님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호세님과는 처음에 어떻게 만나게 되신건가요?

아, 제가 스페인에 요리랑 관련없는 다른 일을 하던중에, 통역번역 이런일도 했었거든요.

 

원래 처음부터 요리를 하셨던건 아니었군요?

아니오, 요리를 계속 하면서 통역이나 번역 이런 다른 일들이 있으면 그런 일들도 같이 했죠. 원래 요리 전공자는 아니구요, 전공은 완전 다르고, 요리는 제가 레스토랑을 따로 운영하기는 했는데 그때는 취미 같은거로 생각을 했던거 같아요. 이제는 아니지만. 아무튼 다른 통번역 뭐 이런 다른 일을 하러 스페인에 장기 거주 하고 있을때 마드리드 바에서 만났어요. 우연히.

 

우연히 바에서 만난게 인연이 되서 지금 레에스티우까지 함께 하시게 된거군요.

그렇죠. 지금은 제 남자친구기도 하구요. 사실 저희는 원래 레에스티우를 서촌에 차릴 생각은 별로 없었고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었어요. 스페인에 가서 레스토랑을 오픈 하려고 했었어요.

 

혹시 코로나 때문에 돌아가기 어려우셨던 걸까요?

그건 아니에요, 저희는 코로나 전에 오픈을 했어요. 원래 저는 스페인에 가서 레스토랑을 오픈을 하려고 했었는데, 지금 레에스티우랑 조금 다른 컨셉이었죠. 그런데 호세가 동양에서 생활을 너무 해보고 싶었고, 주변에서 제 선생님들도 계속 한국에서 한 번 해보라고 권하기도 하셔서, 또 서촌이 좋아서 여기로 오게 되었죠.

서촌의 어떤점이 좋아서 이곳으로 오셨을까요?

원래 집이 가까운 성북동이기도 하고, 서촌에 연고가 많아서 한국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동네’와 친해졌죠. 호세를 만났을 당시 한식에 빠져있었고 계속 공부하고 있었던터라 서촌이 갖고있는 한국적인 매력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되었구요. 선생님들이 하던거나 하라며 말리셔서 (웃음) 지금 하고 있는 음식은 한식이 아니지만 한식이 베이스로 갖고있는 ‘정성’이란 것을 서양 것인 저희의 요리에도 적용하고 있어요. 서양식 셰프지만 도자기를 너무 좋아해서 백자와 한국 도자기, 옻칠 도구들을 참 많이 쓰는데요, 모순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서촌이 그런 곳인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호세와 저의 관계처럼 이런 모순적이면서도 고즈넉한 곳에서 서로 너무 다른 둘이 어우러져 함께 터를 잡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저흰 달라도 너무 다르거든요.

 

오랜시간 외국에서 지내다 돌아온 곳이 본래 살던 곳과 가까운 동네라는 것이 신기하네요. 호세님은 서촌생활, 그리고 한국생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이전에 살던 곳과는 많이 다를텐데 말이에요.

일단 호세가 한옥 정말 좋아해요. 정말 좋아하고, 어쩌다 보니까 되게 좋은 한옥집을 호세도 많이 봤었고요.

 

그럼 지금 한옥에 거주하고 계신가요?

아니오 (웃음) 일반 주택에 살아요. 제가 도자기도 좋아해서 작가님들이랑 인연이 많은데 그런 작가님들이 한옥에 많이 사시다 보니까 호세도 자연스럽게 한옥들을 접하게 되었고요. 뭐 호세는 서촌에서 아직까지는 행복해 하는것 같아요. 아마도 서촌이 갖는 생활패턴이 스페인과 비슷해서인것 같기도 하구요. 근데 호세는 되게 웃긴게 엄청 높은 건물들도 좋아해요. 왜냐면 스페인은 그런게 없어서… 그런 시끌벅적한것 분위기도 좋아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서촌은 호세님에게 정말 좋은 장소일것 같은게 스페인의 생활속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금만 벗어나면 높은 빌딩들이 많은 광화문이랑 시내가 나오잖아요. 

제가 살던 성북동도 많이 비슷해요. 그러다 보니까 저한테도 괜찮은 동네인거 같아요. 근데 그래도 호세가 약간 스트레스 받는 부분은 있죠. 왜냐면 한국사람들은 되게 성격이 급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가끔씩 놀랄 때도 있고요, 또 외국 생활을 엄청 오래하긴 했지만, 저도 한국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가끔 욱 하거나 아니면 신경질적이거나, 급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때 좀 놀래요. 스페인에서는 아무도 안 그러거든요. 여기 오더 들어오는것만 해도 스페인에선 ‘여기 물 주세요’ 하면 줄때까지 느긋하게 되게 기다리거든요? 근데 한국분들은 그렇지 않으실 때가 많으니까. 그래서 놀랄 때도 있구요, 그래도 여기에 잘 적응하는것 같아요.

 

하하 그쵸, 스페인에 비해 한국 사람들이 많이 급한 편이긴 하죠. 그럼 생활 부분에서 이전에 살던곳과 서촌에서의 다른점이 있을까요?

스페인은 해가 참 길어요, 여름은 밤 10까지 환할때도 많거든요. 한국에 해는 그에 비해 참 짧죠. 그래서인지 밥먹는 시간과 끼니가 참 달라요. 아침에 간단히 커피와 간단한 크로아상이나 작은 빵을 먹고 11시쯤 샌드위치를 아침으로 먹어요. 그리고 점심을 3시정도에 다시 먹고 시에스타를 잔 후, 하이티 개념의 차시간을 6시정도에 갖고 저녁을 10시 정도에 또 먹는데요, 해가 기니 일상이 여유로울 수 밖에요. 한국에서의 생활은 빠른패턴의 복잡한 오버랩의 연속이라, 아직 가끔씩 당혹스러울 때가 많이 있어요. 생각의 패턴 또한 서로 너무 복잡해질때가 많아서 한국와서는 많이 싸우게 되네요, 그나마 서촌이라 다행인거 같기도 하고요.

멀리 떨어져 있는것 만큼이나, 문화적으로도 다른점이 많은 나라인것 같네요. 다시 레에스티우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샤퀴테리아 메뉴가 별도로 구성된 것도 그렇고 따로 판매도 하고 계신 것도 그렇고, 햄과 치즈에 애정이 많으신 것 같아요.

‘Charcutería’는 서양권이라면 어딜가나 있는 가게에요, 계속 자연스럽게 봐오던것이고 먹던것인데요, 15년 전쯤 한국에 처음들어와서 샤퀴테리아가 없는것을 보고 너무 절망스러워서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 후에는 엄마들이 우편으로나 귀국할때 보내주셔서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습니다. 샤퀴테리아에 가면 항상 인상 좋으신 분들이 이것 저것 먹어보게 해주셔서 초이스를 할 수 있는데, 어릴적 엄마따라서 샤퀴테리를 사러 단골집에 갈때 참 기분이 좋았어요. 샤퀴테리의 콤콤한 냄새도 좋아했고요, 오래된 샤퀴테리아에서 호세랑 둘이서 티격태격 이것저것 고르는 재미도 이젠 엄청난 추억이네요. 호세가 엄선해서 취급하고 있는 숙성 샤퀴테리는 스페인에서도 ‘장인’들이 만드는 것인데, 저희가 감히 엄두를 못내죠. 하지만 간단한 초리죠나 소세지류 그리고 프레쉬한 치즈류는 저희가 직접 가끔씩 만들어 요리에도 쓰고 판매도 하고 있어요. 종종 오시는 동네분들에게는 저희같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자 테스팅을 항상 해드리는데, 요즘 엄마 아빠와 오는 꼬맹이들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아요. 

 

메뉴판을 보니까 지금이 Vol.II 인데 Vol.I 과의 차이점 및 메뉴 변경 주기는 어떻게 되나요?

제가 개인적으로 지구력이 없는터라 (웃음) 같은 요리를 장시간 계속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이에요. 이 문제때문에도 호세와 많이 싸우고 있어요. 왜 잘 하던걸 통째로 다 바꿔버리냐고요 (웃음). 저희 엄마가 호세가 더 한국사람 같다고 항상 말씀하시는데요, 조선시대 할아버지 같은 고지식함이 유럽인 호세에게 다분해요. 반면 저는 엄청 궁금증이 많아 계속 무엇인가를 직접 해보고, 만져보고 공부해야 직성에 풀려가지고 볼륨 사이의 지구력의 기간은 3-4개월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재료들이 산으로, 들로, 바다로 나기 때문에, 그리고 한반도의 사계는 제가 있어본 여느 나라보다 뚜렷하기에 계절이 바뀌면 자연스레 저희 메뉴판 또한 바뀌고 있어요.


오픈 하기 전에 제가 해왔던 서양식 그리고 새로 받아들인 한식에 대한 큰 고민이 있었는데, 아무리 씨간장을 포함한 최고의 한식 재료를 사용해도제 요리는 한식같지 않았어요. 아직 스페인에 있는 막내동생과 이야기 하던 중 동생이 저에게 ‘그게 너야’라고 했는데 큰 돌을 맞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저란 사람을 받아드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레에스티우의 시작인 Vol.1 이에요. 제 ‘Identity’를 손님들에게 요리로써 설명을할 수 있었어요. 제가 태어나던 해에 엄마가 만든 씨간장으로 재워낸 스테이크는 기본 서양식 테크닉으로 구워 낸 한우 채끝으로, 가니쉬로는 봄 나물을 곁들였고 아직도 레에스티우의 베스트셀러인 ‘뿔뽀 알 라 서초네사’는 완벽한 갈리시아 테크닉으로 조리된 동해 문어를 엄마의 고추장과 된장을 시트러스 계열의 청을 섞어 홈메이드 고추기름을 곁들여 냈어요. 한국인인데 한국 사람이 아닌, 그렇다고 서양사람도 아닌, 요리사로써의 내가아닌 사람으로써의 나를 요리에 담아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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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여름이 다가오며 재료들을 바꾸고 싶어 디자인한 Vol.2는 그리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엮어 보았어요. 개인적으로 제일 아름다웠으면 좋겠었던 플레이트인, 호세의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마리네이드 연어를 주제로 한 ‘Yaya의 연어’를 만들며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어서 여러번 울기도했고, ‘팔마르의 오리’ 혹은 ‘이비자식 부라따’를 만들며 발렌시아의 여름을 추억하기도 했구요. 그리고 볼륨 2의 서촌식 문어구이는 스페인 북쪽에 가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뿔뽀 알 라 가예가’의 맛을 재현을 했고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볼수 없는 가족과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그리움’이 주제였어요. 

한 볼륨이 끝나니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고요, 나중에 더 연구해서 나아진 플레이트들을 맛보여드려 예전 것들과 비교하는 재미 또한 염두에 두고 있어요. 이를 위해 레시피 북을 만들어 계속 업그레이드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볼륨III 도 기대가 많이 되네요! 메뉴 개발에 영감을 주는 것들은 무엇이 있나요?

앞서 말했듯이 많은 요소들이 저희의 영감이 되고 있어요, 가족, 여행, 고향, 친구 등등의 손에 닿지 않는 기억과 추억들을 플레이트 하나하나에 피지컬하게 담아내려고 항상 노력중이죠. 

요리 자체도 저희한테는 큰 영감이 되는데, 오래된 토속요리들을 재해석 하는것, 전통적 베이스와 맛을 토대로 새로운 테크닉으로 재구현 하는것도저희들에게는 큰 즐거움이에요. ‘5 호따스 꼰 기산떼’가 제일 큰 예인데요, 스페인 북쪽 시골 기사식당 같은 곳에서 항상 하몽과 완두콩이 에피타이저에 있는데 저희는 이세용 선생님 도자기에 최상급 하몽인 5호따스 육수에 끓여낸 제철 완두와 수란을 곁들여 새로운 형식의 타파스를 만들었어요. 흔한 감바스 알 아히요도 Vo.1에서 수비드로 재해석 했었고요, 발렌시아의 장어요리인 아지 페브레 또한 장어와 감자는 누구나 좋아하는 구이형태로 그리고 스튜는 장시간 고아낸 장어육수를 에스푸마로 만들어 서빙하고 있어요. 선생님들이 음식은 배려라고 항상 입버릇 처럼 말씀을 하셨는데... 저희가 먹다 불편했던 점들이나 안좋았던 점을 개선하는 것 또한 영감이 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그렇군요. 지금까지 많은 레시피를 연구해 오셨을텐데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무엇인가요?

호세는 빨간 수염선장의 보물주머니를 참 좋아하는데요, 처음에 얇은 반죽안에 해산물이 가득 들어있는 주머니를 저는 ‘Bolso de Verano (여름 주머니)’라고 이름 짓고 싶다고 제안했을때 호세는 ‘원래 해적들이 카리브해에서 지중해로 다녔으니 빨간 수염 선장의 보물주머니가 좋을 것 같아’라고 해서 저희는 다 믿고 응했는데 거짓말이었데요. (웃음) 그래도 주머니 안에 가득 들어있는 랍스터와 새우 그리고 생선 구이가 지중해의 향기를 품고있고 발렌시아나 이비자에서 많이 먹는 성게알을 사용한 벨루떼는 호세에게 제일 지중해스러운 여름 플레이트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로시니를 참 좋아하는데, 투네도 로시니를 오마주 한 ‘한우로시니’는 푸아그라나 트러플 그리고 스테이크, 셰리라는 야생미 가득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제일 여성스러운 플레이트에요. 오목조목하고 섬세한 플레이팅을 하며 여성셰프의 자부심을 항상 느끼곤 하는데 푸아그라와 스테이크의 조합은 저희 수셰프가 스페인 유학시절 제일 맛있게 먹던 요리에 대한 그리움에서 영감받은 플레이트이기도 하죠. 당연히 레에스티우 식구들의 사랑인 ‘빠에야’를 제외한 다른 플레이트를 말씀드린거고요. 

 

설명을 듣다 보니 다 먹어보고 싶어지네요! 레에스티우를 오픈하신지 반년 정도 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운영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무엇이었을까요?

저희가 오픈을 하고 다음날 신천지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그랜드 오픈을 하고 한달 정도를 쉬었었어요. 그렇게 하고 다시 재오픈을 한지 5개월 쪼금 넘었네요. 음, 어려웠던 부분은… 딱히? 저희 그냥 뭐 다들 너무 잘해주시고 상냥하게 대해주시고 하셔서 크게 어려웠던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뭐 아직 그런게 조금 힘들긴 해요. 향신료 구하는것들. 제가 쓰는 것들을 저희 어머님 아버님이 스페인에서 다 보내주세요. 여기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 그런 재료들 공급이 수월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리고 이제 저희 빠에야가 특별한게 호세가 되게 조선시대 할아버지 같아요. 저희보다 더 고지식한 그런 면이 있어요. 그래서 호세가, 물론 제가 빠에야를 만들지만, 호세가 지켜달라고 부탁했던 것들이 있어요. 올리브 오일은 발렌시아 산을 써야 된다. 엑스트라버진 발렌시아 산만 사용을 하고 그리고 향신료도 되도록이면 스페인 것만 사용을 해라, 이런 것들이요. 그러다 보니까 맞춰가는게 조금은 힘들 때가 있죠. 또 처음에는 막 서촌 깍쟁이 이런 얘기들이 있어서 좀 무서웠는데 동네 분들이 다들 잘해주시고 잘 챙겨 주셔서 크게 힘든 점은 없는것 같아요.


크게 어려운 점이 없으셨다는건 다행이네요. 그럼 레에스티우가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하는 그림이 있나요?

제가 항상 신경 쓰는건 항상 오렌지향이 났으면 좋겠어요. 제가 오렌지를 정말 좋아하기도 하고 발렌시아의 상징이거든요, 오렌지가. 근데 저는 그런, 발렌시아에 딱 도착하면 길에도 오렌지 나무가 있거든요. 초여름에 파랗게 열리면 저도 기분이 되게 좋고 그 향을 맡았을때 되게 프레시함과 힐링되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오렌지향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디퓨저도 발렌시아 오렌지향이라는 디퓨저도 많이 사용을 하고 있어요. 향이 정말 무섭거든요. 향이 되게 기억이랑 많이 일차적으로 직감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저는 제가 느끼는 것처럼 오렌지향으로 가득한 힐링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실까요?

오픈한지 얼마 안됐지만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서촌에 오랫동안 머무는 식당이 되는거에요, 오랜시간 꾸준하게 서촌에 레에스티우가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한국은 너무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유행 안탈 것 같은 서촌에도 작은 가게들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힙’한것들에 너무 민감하기도 하고요. 스페인에는 100년이 넘는 바랑 식당들이 있거든요. 매일 같이 같은 가게에서 와인을 먹는 손님들도 존재하고, 매주주말마다 가족이 같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요. 치즈를 만드는 방법 혹은 빠에야를 만드는 방법들을 대대손손 자손들에게 전수하기도 하죠. 저희는 대대손손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촌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추억이 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어요. 그냥 원래 항상 있어왔던 곳처럼요.  


글 | 서촌유희          사진 | 서촌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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